내일 2월 7일은 세월호 참사 300일.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순간들... 그 이후는 견딜 수 없이 더 참혹하다. 

친구 C는 팬미팅을 위해 중국에 갔고, 후배 S는 소원했던 아이를 가졌다. 

나는 답답함을 쓸어내리기 위해 수업을 듣는다. 소포클레스 비극 4회에 이어 

어제는 김응교 선생님과 초보자와 함께 읽는 일본문학을 시작했다. 

일본의 이자나기 이자나미 신화를 시작으로, 

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의 숲을 읽는다. 

허무와 권태, 어쩌면 잉여(현실에 맞서지 않고 비껴가는?)롭게 느껴졌던 그들의 이야기가 새롭게 다가온다. 

가파른 경제성장을 이루었으나 봉건적 제도와 사회를 벗어나지 못한 시기에  

1969년 베트남 전쟁반대와 천황살해 목적으로 도쿄 전공투(전국 공동체 투쟁)이 일어나고, 민주 사회를 만들고자 애썼던 젊은이들의 노력은 실패한다.

그 실패와 결핍, 사회에 대한 환멸을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

실제로 많은 젊은이들이 자살하여 사회문제가 되었고, 자주 일어나는 지진으로 친구와 가족을 잃은 경험이 많은 사람들...   

지금, 여기가 지옥이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자'라고 손내미는 소설... 

자유에 대한 갈망과 단독자로 살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숨겨진 갈망을 바라볼 수 있다면 

도시의 권태로움에 길들여진 젊은이들의 이야기라고만 볼 수 없을 것이다. 

일본인들의 아픔에 같이 아파하고, 깊게 울어주었던 소설이라고 한다.  

언젠가 소설가 김영하가 문학은 현실에서 한발더 나아가 또다른 세계를 열어주는 것이라 했는데, 

우리 시대의 문학은, 소설은 어디로 길을 내어가야할까. 

내가 왜 무라카미 하루키 글을 읽으며 위로 받았는지 조금은 답을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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